사람들

바다를 바꾼 87km, 청춘의 궤적이 되다… '비치대장정' 고윤영·이연재 대장

'대학생 87Km 비치대장정'… 두 대장의 릴레이 열정이 세상을 바꾼 87km를 바다를 바꾸는 기적으로. 1대 대장 고윤영과 2대 대장 이연재가 걷는 푸른 순례길.

청년과 바다, 그리고 스포츠와 봉사. 이 이질적인 단어들을 하나로 묶어 대한민국 해안에 푸른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2020년부터 시작된 '대학생 87Km 비치대장정(이하 비치대장정)'을 이끄는 1대 대장 고윤영과 2대 대장 이연재이다. 방생 11일 만에 해양 쓰레기를 먹고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붉은바다거북. 모니터 너머의 비극 앞에서 "인간의 욕심에 희생되는 생명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라며 품었던 한 청년의 작은 물음표는, 어느덧 거대한 실천적 환경 무브먼트로 진화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위기 속에서도 '스포츠와 환경의 융합'이라는 진정성 하나로 프로젝트의 단단한 뼈대를 세운 '대학생 87Km 비치대장정'의 기획자 고윤영 대장. 그리고 1기 대장정 당시 대원으로 참가해 폭염 속 땀방울의 가치를 온몸으로 체감한 뒤, 이제는 전체 실무를 총괄하며 '비치대장정'의 새로운 비전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연재 대장. 바다를 포기하지 않겠다며 투지와 연대로 뭉친 두 사람을 만나, 대한민국 해안선을 따라 묵묵히 새겨지고 있는 청춘들의 숭고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대학생 87Km 비치대장정 Q. 비치대장정이라는 프로젝트의 시작이 궁금하다. 어떻게 대장정을 기획하게 되었나? A. 고윤영 대장(이하 고윤영) : 결정적인 계기는 뉴스에서 본 아기 붉은바다거북이었습니다. 수족관에서 방생된 지 11일 만에 쓰레기를 먹고 죽은 채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격이 컸습니다. '인간의 편의와 욕심 때문에 저렇게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없을까?'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당시 스포츠 행사 기획을 업으로 삼고 있었기에,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스포츠'와 '봉사', 그리고 세상의 변화를 이끌 '청년'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융합해 비치대장정의 닻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Q. 첫 출정 장소가 태안이었고, 걷는 거리를 87Km로 정한 것에는 깊은 역사적 상징성이 있다고 들었다. A. 고윤영 : 태안은 2007년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라는 아픔을 겪었지만, 123만 자원봉사자들의 땀방울로 기적처럼 살아난 바다입니다. 아픔과 기적이 공존하는 그곳에서, 이제는 청년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기적을 선포하고 싶었습니다. 87km라는 거리는 1965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 참정권을 위해 걸었던 '셀마 대행진'의 거리입니다. 60여 년 전 세상을 바꿨던 그 87km의 기적을, 대한민국 청년들이 바다를 바꾸는 87km로 재현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입니다. Q. 매년 대장정마다 보호해야 할 해양 동물을 마스코트로 선정해 걷는 명분을 새기는 점도 독특하다. A. 이연재 2대 대장(이하 이연재) : 그렇습니다. 1기 거북이를 시작으로 2기 고래, 3기 괭이갈매기, 4기 점박이물범, 5기 수달과 해달 등 매년 위기에 처한 해양 동물을 마스코트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뙤약볕 아래서 걷다 보면 '내가 지금 여기서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수백 번 찾아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걷는 발걸음이 이 동물들의 생명을 살리고 있다는 구체적인 명분이 대원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Q. 이연재 2대 대장은 일반 대원으로 참가했다가 현재는 행사 전체를 총괄하는 대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됐다. 특별한 동력이 있었나? A. 이연재 : 첫해 대원으로 참가했을 때,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과 갯벌을 걷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청년들이 땀 흘리며 지나간 자리에, 거대한 쓰레기장 같았던 해변이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는 것을 보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 강렬한 효능감과 연대감이 제 삶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평대원으로 시작해 조장(아띠지기), 부대장(부아라지기)을 거쳐 지금은 대장(아라지기)으로서 고윤영 대장님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 이 여정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Q. 단순한 환경 정화를 넘어, 매년 코스마다 지역의 서사와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기획력도 돋보인다. A. 고윤영 : 비치대장정은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며 매년 코스를 확장하는 '해안길 종주'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단순히 지리적인 이동이 아닙니다. 일례로 세월호 10주기를 맞았던 5기 대장정은 전남 함평에서 출발해 진도 팽목항에서 해단식을 가졌습니다. 아픔이 있는 바다를 청년들이 직접 걸으며 위로하고 기억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최근에는 해양 쓰레기 문제가 가장 시급한 제주도로 무대를 옮겨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걷는 길 위에 환경과 사회를 향한 인문학적 메시지를 융합하는 것이 우리의 철학입니다. Q. 수백 명의 대학생을 이끌고 장거리를 걷는 일이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요즘 청년들의 에너지는 어떤가? A. 이연재 : 기성세대들은 요즘 대학생들이 개인주의적이라고들 하지만, 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타심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밤중에 한계에 부딪혀 숙소를 이탈했던 대원들을 끝까지 설득해 완주를 이끌어낸 조장들도 있었고, 대학교 4년 내내 매 여름 방학을 비치대장정과 함께한 대원도 있습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서로를 챙겨주며 피어나는 우애, 그리고 함께하면 바다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청년들 스스로를 놀랍게 변화시킵니다. Q. 기업과 지자체의 후원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후원사들이 꼽는 비치대장정만의 차별화된 매력은 무엇인가? A. 이연재 : 접근하기 쉬운 해수욕장에서 잠시 쓰레기를 줍고 사진만 찍고 가는 '보여주기식 일회성 봉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도보 이동의 특성을 살려 차량 진입이 불가능한 사각지대, 가파른 해안 절벽이나 테트라포드 사이에 수십 년간 방치된 쓰레기까지 악착같이 치워냅니다. 땀 흘리며 만들어내는 이 압도적인 환경 정화 임팩트에 기업들이 진정성을 느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건장한 청년들이 자사 로고가 박힌 의류를 입고 일주일간 해안을 누비며 선행을 펼치는 것만큼 건강하고 강력한 ESG 파트너십은 없을 것입니다. Q. 13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다. 앞으로 비치대장정이 나아갈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A. 고윤영 : 대한민국 해안길 총 길이가 약 1,190km입니다. 이를 87km씩 나누어 걸으면 13년, 통일이 되어 북한의 해변까지 걷게 된다면 20년 이상 걸리는 거대한 순례길입니다. 바다를 구하는 일은 결코 특정 환경 전문가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들이 두 발로 걸어 이 국토의 해변 길을 완주하는 그날까지 우리의 무모하지만 위대한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A. 이연재 : 대장정에 참가하는 청년들의 묵묵한 선행이 바다를 바꾸고,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며 바다를 치유하는 이 푸른 연대에, 환경 문제에 공감하는 더 많은 기업과 시민들이 동참해 주시길 바랍니다. 대학생 87Km 비치대장정 단순히 땀 흘려 걷는 행위를 넘어, 청춘의 한계를 시험하는 활동으로 병든 바다를 치유하는 기적, 비치대장정. 누군가는 사서 고생한다며 고개를 젓는 1,190km의 까마득한 여정이지만, 이들에게는 스스로 내디딘 한 걸음이 곧 생명을 살린다는 명확한 확신이 있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위에 0에서 1을 만들어낸 고윤영 대장의 단단한 철학적 기획력과, 모래밭에서 대원들과 뒹굴며 1을 100으로 확장해 낸 이연재 대장의 현장 밀착형 리더십. 두 리더가 빚어내는 완벽한 릴레이 앙상블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비치대장정을 더욱 뜨겁고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 ‘세상을 바꾼 87km’의 역사를 믿으며 묵묵히 쓰레기봉투의 무게를 견뎌내는 이들. 거친 바닷바람과 폭염을 뚫고 이어질 청년들의 푸른 발걸음이 앞으로 대한민국의 해안선을 어떻게 치유하고 우리 사회에 얼마나 거대한 파동을 일으킬지, 그 눈부신 궤적을 벅찬 마음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