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가야금 연주자 김태은, 정통 산조의 묵직한 맥과 25현의 파격을 아우르며 K-국악의 새 지평을 열다.
제30회 고령전국우륵가야금경연대회 일반부 대상(대통령상)을 거머쥐며 일찍이 국악계의 주목을 받아온 가야금 연주자 김태은. 학구적 내공부터 진취적 기획력까지…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입체적 예술가의 정점 선보여.
한양대학교 국악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며 학구적 토대를 다진 그녀는 국가무형유산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보유자인 강정숙 명인을 사사하며 서공철류 산조의 정통 계보를 잇는 묵직한 전수 교육생이다. 동시에 그녀는 '앙상블 THE 가야금'과 '가야노리 가야금 연주단'의 대표, '세종시 가야금 연주단'의 악장을 역임하며 다인원 연주 단체를 이끄는 진취적인 기획자이기도 하다. 25현 가야금 중주를 통해 현대적이고 역동적인 사운드를 유연하게 직조해 내는 그녀의 음악 세계는, 과거의 원형 보존에 머물지 않고 동시대 관객과 호흡하는 살아있는 융합 예술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2019년 제1회 독주회 <현(絃), 소리에 물들다>를 시작으로 2022년 첫 앨범 <김태은 #서공철류가야금산조> 발매, 그리고 2024년 제5회 독주회 <성음(聲音)>과 제6회 독주회 <정음(正音)>에 이르기까지. 가야금 본연의 소리를 향한 치열한 구도(求道)의 길을 걷고 있는 김태은 연주자와 일문일답을 나누었다. Q. 서공철류 가야금 산조 보존회 이사로서 정통 산조의 맥을 잇는 학구적인 활동을 하시는 동시에, '앙상블 THE 가야금'의 대표로서 25현 가야금을 활용한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무대도 활발히 기획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순수 전통과 파격적인 현대화, 전혀 다를 것 같은 두 영역을 어떻게 하나의 예술적 자아 안에서 융합하고 계십니까? A. 서공철류 가야금 산조의 보존은 단순히 옛 가락을 재현하는 일이 아니라, 한숙구 · 서공철 · 강정숙 명인으로 이어져 온 소리의 정신과 미학을 오늘의 언어로 잇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조가 지닌 여백과 긴장, 느리게 쌓이는 울림과 장단의 호흡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낡지 않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정통 산조는 보존해야 할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저를 가장 깊이 있게 만들어 주는 뿌리입니다. 전수 교육을 받으며 배운 것은 단지 가락이나 기교가 아니라, 소리를 어디까지 참고 어디에서 터뜨릴 것인가, 청중과 어떻게 호흡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반면 25현 가야금으로 연주되는 '앙상블 THE 가야금'의 무대는 그 뿌리 위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공간입니다. 25현 가야금은 넓은 음역과 풍부한 화음, 다양한 음색을 통해 가야금이 지닌 가능성을 더 넓게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전통과의 단절이 아니라, 가야금의 본질적인 울림을 오늘의 관객에게 더 가깝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두 영역은 사실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산조에서 배운 '소리의 숨'과 '장단의 긴장감'은 현대적 편곡과 앙상블 연주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반대로 25현 가야금의 현대적 표현을 경험할수록, 전통 산조가 지닌 절제와 깊이, 그리고 한 음에 담긴 무게를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됩니다. 저는 전통을 지키는 일과 현대화하는 일을 따로 두지 않습니다. 전통이 없는 현대화는 쉽게 소모되고, 현대적 감각 없는 전통은 관객과의 접점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통 산조의 묵직한 맥을 바탕에 두고, 25현 가야금과 앙상블 무대를 통해 그 소리가 오늘에도 살아 있음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궁극적으로 제가 추구하는 것은 '가야금 답다'라고 느껴지는 음악입니다. 낡은 틀에 머무르지 않되, 가야금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음악. 그것이 제가 전통과 현대를 하나의 예술적 자아로 융합하려는 이유입니다. Q. 2019년 독주회 <현(絃), 소리에 물들다>에서 서공철류 전바탕을 연주하셨고, 2024년 독주회 <성음(聲音)>과 2025년 독주회 <정음(正音)>까지, 유독 타이틀에서 '소리'와 '음(音)' 자체에 대한 깊은 탐구가 엿보입니다. 연주자님이 궁극적으로 화살표를 두고 찾아가고 있는 '가야금 본연의 소리'란 무엇입니까? A. 2019년 첫 독주회 <현(絃), 소리에 물들다>에서 서공철류 전바탕을 연주하면서, 가야금이라는 악기가 가진 본질적인 소리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2024년 <성음(聲音)>, 2025년 <정음(正音)>까지 이어오면서 '소리'와 '음(音)'이라는 말을 계속 붙들고 작업해 왔는데요. 제가 생각하는 '음'이란, 단순히 진동수가 만들어내는 물리적인 소리를 넘어서 연주자의 호흡과 마음이 현을 통해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과정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가야금에서 '음'은 오른손으로 현을 뜯는 순간 시작되지만, 사실은 그 전에 연주자의 숨과 정신이 이미 현에 담겨 있어야 합니다. 실연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오른손의 탄현 각도와 힘의 조절, 왼손의 농현과 추성, 그리고 장단에 따른 호흡의 흐름이 모두 '음'을 만들어냅니다. 같은 음을 뜯어도 손끝에 실리는 힘의 방향에 따라, 왼손이 현을 누르고 떠는 속도에 따라 소리의 결이 완전히 달라지죠. 서공철류 산조를 연주할 때 특히 중요한 것은, 휘모리로 갈수록 빨라지는 장단 속에서도 각 음의 머리와 꼬리를 명확히 살리면서 여음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궁극적으로 찾아가고 싶은 '가야금 본연의 소리'란, 단순히 음을 정확하게 내는 것을 넘어서 연주자의 마음과 소리가 하나로 만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 가야금이 가진 깊고 청아한 울림, 명주실 현이 만들어내는 그 고유한 공명과 여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오늘날의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려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결국에는 관객분들이 무대에서 '아, 이게 가야금의 진짜 소리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현과 손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내는 본질적인 울림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Q. 대표님께서 이끌고 계신 '앙상블 THE 가야금'은 25현 가야금 중주를 내세워 국악의 융합과 대중화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창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전통적인 12현을 넘어 다수의 25현 가야금이 한 무대에서 호흡을 맞출 때 발생하는 특별한 음악적 시너지는 무엇이며, '앙상블 THE 가야금'만의 독창적인 레퍼토리를 기획하실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A. '앙상블 THE 가야금'을 이끌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25현 가야금 여러 대가 한 무대에서 호흡을 맞출 때 만들어지는 소리의 층위와 풍요로움입니다. 전통적인 12현 가야금은 농현과 여음의 표현력이 뛰어나지만 음역대가 제한적입니다. 반면 25현 가야금은 넓은 음역과 화성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여러 대가 모이면 오케스트라에 가까운 소리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저음부부터 고음부까지 각기 다른 음역대의 가야금이 층을 이루면서, 단선율 악기인 가야금이 다성부 하모니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시너지라고 생각합니다. 레퍼토리 기획 시 가장 중점을 두는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가야금다운 소리'를 잃지 않으면서 대중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곡을 선정하는 것입니다. 고향의 봄, 꽃타령, 까투리타령 같은 전통 곡부터 대중가요, OST, 팝까지 다양한 장르를 다루지만, 모든 곡을 편곡할 때 가야금 고유의 탄현 주법과 농현의 맛을 살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둘째, 무대에서의 시각적, 청각적 균형입니다. 2중주부터 8중주까지 다양한 유닛 편성을 통해 섬세한 울림부터 화려하고 에너지 넘치는 앙상블까지 스펙트럼을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관객이 '가야금이 이런 소리도 낼 수 있구나'라고 놀라면서도, 동시에 '역시 가야금의 매력은 이거야'라고 공감할 수 있는 무대를 지향합니다. 결국 '앙상블 THE 가야금'의 목표는 전통의 뿌리를 지키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된 가야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앙상블 THE 가야금'을 이끄는 리더이자 기획자로서의 최근 행보가 눈부십니다. 앞으로 가야금이라는 전통 악기가 한국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시는지, 향후 비전이 궁금합니다. A. 사실 개인보다는 함께해주는 연주자들과 관객 여러분 덕분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야금은 동아시아 발현악기 중에서도 가장 원형에 가까운 악기로 평가받습니다. 그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해석을 더했을 때, 정말 특별한 힘이 발휘된다고 믿습니다. 제가 꿈꾸는 건 가야금이 한국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 '문화 교량'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전통의 뿌리는 단단히 지키되, 서양 음악이나 월드뮤직, 심지어 K-pop까지 다양한 장르와 만나면서 한국 고유의 정서를 전하는 매개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실제로 최근 국제 페스티벌들을 보면, 한국과 영국, 오스트리아, 중국, 미국 아티스트들이 함께 무대를 만들면서 국경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가야금도 그런 흐름 속에서 독창적인 음색으로 동서양 현악기와 어우러지고, 문화와 정서가 하나 되는 무대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디지털 측면에서도 가능성이 열리고 있습니다. 국악기 소리를 샘플로 만드는 데이터화 작업 등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물리적 무대를 넘어 온라인과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울림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사람입니다. 차세대 예술가들을 어떻게 키워내고, 국제 교류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느냐에 따라 가야금의 세계화는 지속 가능해질 거라고 봅니다. 젊은 연주자들이 새로운 곡을 초연하면서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모습에서 정말 큰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결국 제가 꿈꾸는 비전은 이렇습니다. 가야금이 단순한 '전통 악기'가 아니라,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세계에 전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된 '살아 있는 음악'으로 자리매김하는 것. 전통과 현대, 한국과 세계를 잇는 그 다리 역할을 가야금이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가야금 연주자 김태은의 음악은 관습에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전통의 깊은 우물을 긷는 수행자적인 태도로 정통 산조의 원형을 보존하는 동시에, 앙상블의 무대에서는 누구보다 유연하게 대중과 호흡하며 국악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명주실 위로 흐르는 고요한 성음(聲音)부터 25현의 역동적인 파격까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그녀의 깊고 입체적인 예술 세계가 앞으로 K-국악계에 어떠한 신선한 파동을 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김태은 연주자는 다가오는 하반기에도 다채로운 무대를 통해 대중과 호흡한다. 오는 10월